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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xible Morocco 

어느 도시 어느 골목을 걷더라도 과거와 현재가 선명하게 공존하는 아프리카 서북단 나라 모로코. 문화적, 지리적, 종교적 경계에서 특유의 플렉시블을 만들고 지켜온 시간여행의 나라 모로코. 나는 길에서 사진을 배웠다. 지금은 사진에서 길을 배우고 있지만 여전히 난감한 것은 작은 프레임에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이다. 사람 냄새 흠씬 나는 골목과 흔적투성이인 삶이 있어 그 동안 모로코를 자주 찾아왔었다. 모로코에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 많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다채롭게 공존하며 사람들의 삶에 독특한 유연함과 혼합이 있다. 노새를 끌고 가는 목동의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있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극도로 절제된 마을마다 위성 텔레비전 안테나가 과하게 빼곡하다. 살아온 이야기가 있고 살아낸 세월이 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이야기를 써가고 있는, 모로코는 그야말로 사람들 사는 동네다. 유연함은 간단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행착오와 통찰이 오랫동안 쌓여야 한다. 과거와 공존해온 사람들은 언제는 합의했을 것이고 때로는 투쟁을 불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깍이고 닳아 간신히 남은 것이 바로 유연함이지 않을까. 사랑하는 연인 일자를 떠나 보내며 “당신 앞날에 행운이 있길 빌어요” 라고 말하던 릭의 카페가 있는 하얀 카사블랑카. 시원한 바닷바람을 선사하던 카스바와 안달루시안 정원이 정겨운 라바트. 제이슨 본이 지붕 위를 날아다니고 제임스 본드가 오토바이로 골목 골목을 누볐던 탕헤르. 모로코의 산토리니 라고 불리는 동화책 같은 파란색 마을 쉐프샤우엔. 천년 세월 그대로인 9,600 개의 골목에서 온갖 소통을 하며 사는 페스. 밤하늘 별빛이 잊을 수 없이 로맨틱했던 사하라. 아프리카 최대의 광장시장에서 과거를 만날 수 있었단 마라케시. 이 곳에서 내가 몇 년 동안 만나고 스쳤던 장면들로 모로코에 대해 겨우 한 뼘만큼 알게 되었지만 그럴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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